막걸리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부터다
link  미세스약초   2021-05-20

고구려주와 신라주는 고대 중국에서 맛좋은 명주로 소문나 있었다. 당나라때 시인 이상은이 "한 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수이 사라질까 두렵구나"하고 읊은 걸 보면 알 만하다.
또 일본 고대 기록에 보면 일본에 술 빚는 법을 처음 알려준 것이 백제사람 '인번'이라고 했다.

이 유명했던 삼국시대의 술들이 지금의 약주나 막걸리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문헌상 누룩으로 담는 양조주라는
것만은 추정할 수가 있다.

막걸리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때부터이다. 이규보의 시에 "나그네 창자를 박주로 푼다"는 대목이 있고 이달충의
시에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술로서 막걸리 이미지는
불변임을 알 수 있다.

고려 때 시인 윤소종의 다음 시에서는 막걸리에 얽힌 뼈아픈 가난이 감전되듯 엄습해 온다.
"슬프도다 유월에 심은 조 익으려면 멀었는데 /아이들은 병들어 나무뿌리 씹고 있다 / 천장보고 누워 한숨만 쉬고 있는데
/아낙은 머리털 잘라 술지게미와 바꿔온다/ 그나마 쉬어서 먹을 수가 없고녀."
술지게미는 막걸리 거르고 난 찌꺼기인 것이다.

'술'의 어원은 범어의 쌀로 빚은 술을 뜻하는 sura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따라서 어원상 곡주를 뜻하며, 막걸리의
조상인 셈이다.

곡주가 익어 청주와 술지게미를 나누기 이전에 막 걸러서 만든 술이라고도 했다. 비운의 인목대비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당한 대비의 어머니 노씨부인이 술지게미를 재탕한 막걸리를 섬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이 연유가 되어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 해서 모주라 불렀다고 한다.

이 너무나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막걸리가 성인병의 가장 큰 원흉인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치를 낮추어 주고 저혈당치를
높여준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되었다. 그래서 막걸리의 원주를 약주라고 불렀던 걸까.
선조들의 슬기에 마냥 숙연해 진다.









이규태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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